드라마는 시청자에게는 감동과 재미를 주는 콘텐츠지만, 작가에게는 서사와 캐릭터, 세계관을 창조하는 예술의 장이자 기술의 무대입니다. 장르마다 요구하는 연출과 구조, 표현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작가들은 창작 성향과 서사 구성의 자유도에 따라 선호하는 장르가 뚜렷하게 갈립니다. 본문에서는 한국 드라마 작가들이 특히 선호하는 장르들을 중심으로, 그 이유와 함께 서사 구조, 연출의 특징, 캐릭터 구성의 유연성 등을 분석합니다.
1. 휴먼 드라마 – 감정선 중심, 작가의 문장력이 빛나는 장르
휴먼 드라마는 인간의 삶과 감정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는 장르로, 작가의 언어력과 인물 설계 능력이 가장 크게 드러납니다. 큰 사건 없이도 인물 간의 관계 변화, 내면의 심리 묘사, 일상의 대사만으로도 서사를 끌어갈 수 있기 때문에, **글로 ‘감정의 결’을 표현하는 작가들에게 이상적인 장르**입니다.
특히 <나의 해방일지>, <디어 마이 프렌즈>, <눈이 부시게>와 같은 작품은 작가의 ‘문장력’이 드라마의 중심이 됩니다. 플롯보다 감정이 먼저이고, 캐릭터의 선택과 변화가 극을 이끄는 구조이기 때문에 작가의 색깔이 강하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또한 장면 전환이나 사건의 전개보다는, 대사 한 줄과 침묵의 여운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이 중요한 만큼, 섬세한 심리 묘사를 즐기는 작가에게 매우 매력적인 장르입니다.
이 장르는 대중성과 문학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작가의 철학이나 주제를 깊이 있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작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드라마 작가로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를 가장 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르로, 경험 많은 중견 작가들이 즐겨 찾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2. 장르물(스릴러, 범죄, 미스터리) – 플롯 설계와 복선 활용에 최적화
스릴러, 범죄, 미스터리 장르는 작가의 ‘설계 능력’이 가장 크게 요구되는 장르입니다. 반전과 복선을 통해 시청자의 예상을 비틀어야 하며, 이야기의 흐름을 다층적으로 쌓아야 하기 때문에 논리적 사고와 구조 설계력이 중요한 역량으로 작용합니다. 때문에 **플롯 구성에 강한 자신감이 있는 작가들이 선호**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시그널>, <비밀의 숲>,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모범택시>, <보이스> 등이 있으며, 이들 드라마는 스토리 자체가 정밀하게 짜인 구조로 진행됩니다. 특히 김은희 작가나 이수연 작가 등은 논리적 짜임새와 함께 캐릭터의 심리와 사회적 메시지를 결합하여 강한 몰입감을 이끌어냅니다.
이 장르의 또 다른 매력은 ‘이야기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개연성과 서스펜스를 기반으로 한 서사는 작가가 전개를 하나하나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디테일 하나가 전체 플롯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창작자로서의 주도감과 성취감이 큽니다. 또한 사회적 메시지를 포함하기 쉬워, 단순한 오락 이상을 추구하는 작가들에게도 선호도가 높습니다.
다만 치밀한 자료 조사와 장면 구성이 필요하며, 연출과 편집이 조금만 어긋나도 전체 플롯의 힘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에 협업 능력도 중요한 장르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가 잘 맞아떨어질 경우, 작가 입장에서 가장 ‘글 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3. 판타지 & 사극 – 세계관 확장이 가능한 서사의 놀이터
판타지와 사극은 **세계관 설정과 캐릭터 창조의 자유도**가 높아,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르입니다. 특히 기존의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하는 퓨전 사극이나, 초능력, 이계(異界), 타임슬립 등을 활용한 판타지 드라마는 창작자의 스토리텔링이 가장 풍부하게 표현될 수 있는 무대입니다.
<도깨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킹덤>, <육룡이 나르샤>, <환혼> 등은 모두 강력한 설정과 세계관, 신화적 요소가 결합된 작품으로, 캐릭터가 단순히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 됩니다. 작가는 이 장르를 통해 역사와 철학,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상징적 구조 안에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장르는 연출의 개입 폭이 크기 때문에, 작가가 연출자와의 협업을 통해 시청각적 스펙터클을 함께 구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작의 확장성이 높습니다. 캐릭터의 운명, 세계의 법칙, 시공간의 연결 등 다양한 설정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창작 욕구가 강한 작가들에게 이상적인 장르로 여겨집니다.
물론 제작비 이슈, 설정 과잉, 시청자의 진입 장벽 등의 단점도 존재하지만, ‘다음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작가에게는 그만큼 매력적인 도전의 장르이기도 합니다. 특히 베테랑 작가들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온전히 구축할 수 있는 장르로 판타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라마 작가들이 선호하는 장르는 단순히 인기나 시청률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만의 언어와 세계를 얼마나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휴먼 드라마는 감정선 중심의 섬세한 묘사가 가능하고, 장르물은 플롯 설계의 쾌감을 주며, 판타지와 사극은 상상력의 확장을 허용합니다. 작가의 창작 방식과 서사 지향에 따라, 어떤 장르가 가장 이상적인 ‘무대’인지는 달라질 수 있지만, 공통적으로 이야기의 힘을 믿고 이를 설계할 수 있는 장르를 더욱 선호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